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유전자 시퀀싱 기술 시장의 최강자인 일루미나는 2016년 1월 혈액 기반의 액체생검 연구 분야를 스핀오프해(spin-off) 그레일(Grail)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당시 일루미나의 발표는 업계를 뒤흔들었는데 이미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가 아닌 정상인에게서 매년 혈액검사로 암을 찾겠다는 당찬 포부 때문이었다. 일찍이 암을 찾아 사망률을 낮춰 암을 치료하자는 목표다. 그레일은 ‘종양학 분야의 성배(The holy grail in oncology)’는 초기 암을 찾을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찾는 것이며, 인류와 암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빠른 기술 발전도 뒷받침되고 있다.
다음해 일루미나는 JP모건헬스케어컨퍼런스에서 새로운 방식의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플랫폼을 소개하면서 ‘차세대염기서열(NGS) 분석 100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참고로 2005년 NGS 분석 장비가 등장했고, 2013년 일루미나는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으로부터 첫 의료용 NGS 장비인 MiSeqDx를 승인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레일이 1만명의 정상인과 암 환자를 대상으로하는 임상에서 초고감도 NGS 분석법으로 혈액에 떠다니는 유전정보(cell-free nucleic acid, cfNA)를 분석해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은, 일반인 투자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들렸다. 2016년 그레일은 CCGA(Circulating Cell-free Genome Atlas)라는 이름의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NCT02889978). 이듬해 유방암 환자 12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STRIVE 임상도 환자 모집에 들어갔다(NCT03085888).
짐작할 수 있다시피 그레일은 임상개발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또한 ②-1편에서 나온 미리어드제네틱스의 예와 같이, 데이터 확보는 암 진단 제품의 정확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라는 점에서도 중요성은 더해진다. 그레일은 시리즈B로 한화로 1조원이 넘는 투자유치를 포함해 3년 동안 총 16억1500만달러(약 1조915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메드테크(medtech) 분야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빌게이츠와 아마존 설립자인 제프 베조스의 벤처투자사인 베조스익스피디션스(Bezos Expeditions)도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그레일은 유명세를 더했다.
뒤따라 액체생검 암 조기진단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텍이 연이어 나왔고 역시 대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했다. 2017년 한해에만 미국에서 액체생검 기업에 21억7900만달러 규모의 투자금이 들어갔다. 결과야 어찌됐든 암 조기진단 액체생검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레일이 CCGA 임상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났다. 애초 임상에 참여하는 대상는 1만명에서 1만5000만으로 늘어났고, 임상은 2022년에 끝날 예정이었지만 2년 늦은 2024년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 그레일과 액체생검 암 조기진단의 초기 임상 결과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현재 액체생검 분야는 어디쯤 왔을까? 중간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주목할만한 액체생검 조기진단 임상 결과를 업데이트하고 그 가능성과 한계점을 짚어봤다....